동해신묘의 정체성과 복원에 대한 학술대회

Ⅰ.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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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51회 작성일 2023-03-0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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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東海神에게 제사지냄으로서 바다에서의 안전과 국가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국가 지원으로 제사를 지낸 곳이 東海神廟 1) 이다. 이곳에서 지낸 제의를 동해신묘제 2) 라고 한다.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조산리에 위치해 있으며 2000년 1월 22일에 옛터를 ‘강원도 기념물 제73호’로 지정되었다.

동해신묘를 세운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 관련 기록 3) 을 보면, 고려시대에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수록된 관련 기록을 보면 조선 초기에 국가제사 가운데 중사(中祀) 장소로 정비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성 소부부고』, 『여지도서』, 『관동읍지』, 『현산지』, 『동국문헌비고』, 『향토지』 등에 관련 기록이 전한다.

 

18세기 기록을 보면 동해신묘는 정전(正殿) 여섯 칸, 신문(神門) 세 칸, 전사청(奠祀廳) 두칸, 동재(東齋) 두 칸, 서재(西齋) 두 칸, 백천문(百川門) 한 칸 규모였다. 제향은 세수(歲首) 에 별제(別祭)를 올리고, 춘추로 상제(常祭)가 있었다. 1722년(경종2)에 양양부사 채팽윤과 1752년(영조 28)에 양양부사 이성억이 중수하였다. 1800년(정조 24)에는 어사 권준의 상소에 따라 강원도관찰사 남공철 주관으로 중수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들어와 백천문에 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이전에 백천문은 철폐된 것으로 보인다.

1908년(융희 2) 12월 26일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하여 동해신묘는 철폐되었다.

당시 양양군수 최종락이 정부의 영에 따라 신위를 신묘 뒤편에 매장하고 신묘를 철폐하였다는 기록이 양양군 『향토지』에 전해진다.

현재 동해신묘는 1993년부터 시작한 동해신묘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복원된 것이다. 1605 년(선조 38)에 허균이 지은 <중수동해용왕묘비(重修東海龍王廟碑)>와 1800년(정조 24)에 관찰사 남공철이 지은 글인 <양양동해신묘중수기사비(襄陽東海神廟重修紀事碑)>도 복원되었다.

오석으로 되어 있는 <양양동해신묘중수기사비>는 높이는 35㎝, 둘레는 60㎝ 안팎으로 사면에 글씨가 석각되어 있으며 훼손이 심한 상태다.

동해신묘 관련한 기존의 조사ㆍ연구 성과는 다음과 같다.

정영호 교수가 1997년 「동해묘에 관한 소고」 제목으로 발표한 글에서 동해 신앙의 유래, 동해묘의 역사적 성격, 동해묘 복원 방안에 대하여 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하였다. 4) 1999년에는 강릉대 박물관에서 양양군의 의뢰를 받아 동해신묘 발굴조사를 진행하여 해당 유적에 대한 심도있는 조사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보고서의 뒷부분에는 동해신묘 관련 자료와 연구 성과를 이규대 교수가 정리하여 실었기에 이에 대한 현황 파악을 가능하게 하였다. 5) 장정룡 교수는 「동해신묘의 문화사적 고찰」이란 제목으로 동해신묘의 건립과 이전 문제를 각종 자료와 함께 전승되는 설화를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하여 고려말에 정동진에 건립된 동해신묘를 조선시대에 양양으로 이전하였음과 동해신묘의 건물 배치, 모신 신령 등에 대하여 논지를 전개하였다. 6) 양언석 교수는 「동해신사(東海神祠) 고찰 –명칭을  중심으로-」에서 각종 기록에 소개된 내용을 중심으로 동해신사를 이르는 명칭과 이전설, 훼철과 복원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7)

이와 같은 조사와 연구를 통해 동해신묘 관련 유적과 관련 기록을 폭넓게 소개하였기에 관련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한 동해신묘 명칭과 모신 신령, 지닌 의미와 성격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가능케 하였다.

필자는 기존 연구성과에 더하여 동해신묘에서 설행한 제의 전통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할수 있는 토대 구축을 위해 『국조오례의』에서 관련 내용을 참고하였으며, 동해안에서의 신앙 전통과 관련 기록을 정리하고, 이에 더하여 동해신묘의 전승 양상을 소개함으로서 동해신묘 복원과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제의 연구와 재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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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제당 입구 중앙에 ‘東海廟’라 쓴 편액을 걸었으나, 문화재 지정 명칭은 ‘襄陽東海神廟址’ 즉 ‘東海神廟’라 함을 알수 있다, 각종 기록과 고지도에는 東海神祠, 東海神祠堂, 東海神廟, 東海廟, 東海神檀, 東海神坮 등 다양하게 적혀 있다.

이 글에서는 문화재 지정 명칭인 ‘東海神廟’로 통일하여 적고, 필요시 다른 명칭을 사용하였다.

2) 東營狀啓謄錄』을 보면, 동해신묘에서 양양부사를 헌관으로 임명하여 지낸 제의 명칭을 ‘東海廟祭’라 하였음을 확인할수 있다. 현재 동해신묘에서 매년 1월 1일 지내는 제사를 공식적으로 ‘東海廣德龍王神 祭禮’라 하며, 이를 약칭하여 분방기에 ‘東海神廟祭’라고 적었다. 이에 필자는 이 글에서 제의 명칭을 ‘東海神廟祭’로 통일하여 적었다.

3) 『高麗史』 雜祀條 顯宗16년 5월 <…以海陽道定安縣再進珊瑚樹陞南海神祀典…> 『高麗史節要』 <…敎曰海陽道定安縣再進珊瑚樹其南海龍神宜陞祀典以奬玄功…>

4) 정영호, 「동해묘에 관한 소고」, 『청람사학』창간호, 한국교원대학교 청람사학회, 1997.

5) 강릉대 박물관, 『양양 동해신묘』, 1999.

6) 장정룡, 「동해신묘의 문화사적 고찰」, 『강원도민속연구』, 국학자료원, 2002.

7) 양언석, 「동해신사(東海神祠) 고찰 –명칭을 중심으로-」, 『아시아강원민속학』 제33집,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