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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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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의 인물

    양양의 역사 인물을 소개합니다.

    Total 549건 43 페이지
    • 45
      ○ 최용철(崔容喆)(1916~1988년)
      ○ 최용철(崔容喆)(1916~1988년) 관향은 강릉이며 현남면 입암리 태생이다. 일제 때 양양군청 축산계장으로 재직하였고 어업조합 남애출장소장으로 근무하였으나 나라의 독립을 위해 국민운동을 하며 광복과 6·25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남면 대동청년단장으로 전답을 팔아 사비로 대동청년회 운영과 단원들의 뒷바라지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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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4
      ○ 최용헌(崔容憲)
      ○ 최용헌(崔容憲) 관향은 강릉이며 황해도에서 경찰계에 종사했다. 광복 전에 귀향하여 권농하다가 다년간 양양면 부면장을 역임하고 월리에서 과수원을 경영한 반공투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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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3
      ○ 최우태(崔宇泰)
      ○ 최우태(崔宇泰) 관향은 강릉이며 자는 회원(會元)이다. 상은(相殷)의 아들로 숙종때 문과에 급제하고 만경안산(萬頃安山)현감을 지냈다. 수재이고 기품이 훌륭하며 풍류를 즐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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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2
      ○ 최원집(崔遠集)
      ○ 최원집(崔遠集) 관향은 강릉이며 강원교육양성소 수료 후에 초등교육에 종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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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
      ○ 최응우(崔應禑)
      ○ 최응우(崔應禑) 관향은 강릉이며 중종조에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수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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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
      ○ 최응주(崔應周)
      ○ 최응주(崔應周) 관향은 강릉이며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보문(普文)에 합격한 천재다. 삼척군 등 각군의 속관(屬官)을 역임한 후 양양에서 사법대서를 개업하고 노부에 효성을 다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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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9
      ○ 최인식(崔寅植)
      ○ 최인식(崔寅植) 관향은 경주이며 형은 병식(丙植)이다. 형제가 시조명필로 이름이 높다. 양양의 재사로서 첫손 꼽으며, 5척 단구나 대담하고 경세에 능하였다. 기미만세 때는 선도적 역할을 하여 옥고를 치른 투사로서 토목공사와 건축업으로 양강에 추종할 자가 없이 독무대에서 활약하였고 독립투사 사업가로 명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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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
      ○ 최 재(崔 滓)(고려)
      ○ 최 재(崔 滓)(고려) 지주(知州)라는 벼슬에 있을 때 강향사(降香使)가 존무사(存撫使)를 능욕했다 생각하니 나도 장차 이와 같은 봉변을 당할 것 같아서 벼슬을 버리고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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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7
      ○ 최 정(崔 晶)
      ○ 최 정(崔 晶) 관향은 경주이며 손양면 여운포리 출신이다. 호걸형으로 양양 속초경찰서장을 지냈고 퇴직 후 상경하여 실업을 개척, 여유있는 생활을 한 입지인(立志人)이다. 인정이 두터워 많은 사람을 구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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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
      ○ 최정규(崔正圭)(?~1977년)
      ○ 최정규(崔正圭)(?~1977년) 관향은 강릉이며 현남면 입암리 명문가의 출신이다. 춘천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공수전․현서․현북․병산․죽왕국민학교장을 역임하였다. 특히 현서국민학교 교정에 보물급의 석불을 안치하여 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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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
      ○ 최정립(崔挺立)(1547~1654년)
      ○ 최정립(崔挺立)(1547~1654년) 관향은 강릉이며 자는 신숙(信淑)이고 호는 둔제(遯齊)이다. 1599년 조산리에 입주한 강릉최씨 선조로서 세종(世宗) 때의 문관 조은 최치운(釣隱 崔致雲)의 후인(後人)이다.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직을 마다하고 선조조(宣祖朝)에 절충부호군(折衝副護軍)이 되었으나 금서(琴書 :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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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
      ○ 최종낙(崔鍾洛)(조선)
      ○ 최종낙(崔鍾洛)(조선) 고종 무신(1908년)에 부임하여 동해묘 려제단(厲祭壇)을 철폐하고 신학에 치중하여 현산학교를 확장하고 각면의 서당과 각 마을 야학을 신학으로 교수시켰다. 신학은 남궁 억, 최종낙 양(兩) 군수로부터 시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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