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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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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의 인물

    양양의 역사 인물을 소개합니다.

    Total 549건 17 페이지
    • 357
      ○ 김홍제(金洪濟)
      ○ 김홍제(金洪濟) 관향은 경주이며 한학에 능하고 시률에 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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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
      ○ 김환기(金桓起)(1888~1949년)
      ○ 김환기(金桓起)(1888~1949년) 관향은 강릉이며 한문에 박학하며 시문에 능하였다. 3·1운동 때 동민의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다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반공활동을 전개 호림부대 추격 시에 물심양면으로 후원한 것이 발각되어 무기형을 받고 함흥형무소에서 복역 중 국군진격 시에 피살되었다. 영령은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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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
      ○ 김환배(金桓培)
      ○ 김환배(金桓培) 관향은 김해이며 한문에 소양이 있고 호변가로서 김삿갓과 같은 혜학가로서 8도를 역방하면서 영시와 친교로 낙을 삼고 방랑한 재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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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
      ○ 김 훤(金 晅)(고려)
      ○ 김 훤(金 晅)(고려) 노경륜(盧景倫)을 반항함으로서 양양부사로 강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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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
      ○ 김희환(金熙煥)
      ○ 김희환(金熙煥) 관향은 강릉이며 호는 가옹(可翁)으로 철종조에 호판(戶判)을 지냈다. 영언부원군(永彦府院君)의 스승으로서 학문과 시문이 일세를 풍미(風靡)하였다. 90상수를 장담하고 다음과 같은 시문을 영언부원군에게 보냈다. 영언전어기기여 종차수년실혹가 여만공명일판서 성명은질관문려 (永彦前語豈欺餘 從此數年失或假 餘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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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2
      ○ 남궁억(南宮檍)(조선)
      ○ 남궁억(南宮檍)(조선) 고종 병오(1906년) 1월에 양양군수로 도임하였다. 한말의 애국지사로서 조국애와 민주사상에 불타는 개화의 선구자이며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서 불출세(不出世)의 위인이다. 국권회복과민족부강의길은 교육에 있음을 선각하시고 먼저 민의를 들으면서 현산학교(峴山學校)를 설립한 것이 1906년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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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1
      ○ 남태제(南泰濟)(조선)
      ○ 남태제(南泰濟)(조선) 정치에 엄정하고 선정하여 근세에 찾을 수 없는 우수한 행정을 하였다. ‘엄명지치훈도지정태비근소유’(嚴明之治訓導之政殆非近所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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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
      ○ 남태희(南泰熙)
      ○ 남태희(南泰熙) 관향은 미상으로 시서에 능하고 인격 고매, 불언묵묵 실천 위주의 생활로 물치산장에 우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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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
      ○ 노경복(盧景福)
      ○ 노경복(盧景福) 관향은 광주이며 양양읍 태생이다. 서흥(瑞興)부사로 유년시 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본래 가난한 가정이므로 잘 먹지 못했으나 대과관주서(大科官注書)를 지냈다. 기한(飢寒)의 고통을 나타내지 않았고 그 동리에서 효성이 지극하여 음식물을 주어도 좋은 것도 먹지 않고 집으로 가지고 가서 부모님께 공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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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8
      ○ 노기경(盧起慶)(1755∼1805년)
      ○ 노기경(盧起慶)(1755∼1805년) 관향은 광주이며 호는 무제(茂齊)이다. 안정(安鼎)의 후손으로 천문지리에 밝고 경학에 박섭(博涉)하여 이학에 정통하고 문집이 많이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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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7
      ○ 노병렬(盧炳烈)(1889∼1978년)
      ○ 노병렬(盧炳烈)(1889∼1978년) 관향은 광주이며 한학에 열중하여 대가의 경지에 이르렀고, 풍채는 두목지(杜牧之)와 같으며 선풍도골(仙風道骨)다웠다. 음풍영시(吟風詠詩)하면서 무산십이봉하도원(巫山十二峰下桃源)에 사는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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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6
      ○ 노병목(盧炳穆)(1879∼1962년)
      ○ 노병목(盧炳穆)(1879∼1962년) 관향은 광주이며 호는 석천(石泉)으로 별명은 땡삐이다. 유시부터 한학을 닦아 조예가 깊었으며 보천교에 입도강산(入道江山)을 누볐고 일제 때에도 단발하지 않고 강인하게 반일했으며, 인공 때는 반동분자로서 공민증과 선거권도 박탈당했었다. 자유당시절 전북대학교에서 한문강의를 청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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